반쪽...
우리의 삶은 언제나 불완전한 반쪽들과 비슷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 나머지 반쪽을 찾아 헤메는 긴 여정이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이다.
사랑도 돈도 명예도 그 어느 것도 완전히 꽉 채워진 삶이란 없는 것 같다.
그 굴레의 틀을 제각기 만들어 놓고 그 굴레를 채우기 위해 끝없이 질주하는 것이다.
자신이 1억의 굴레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모두 채우게 되면 또 다른 10억의 굴레를
만들고 또 10억을 채우게 되면 50억의 굴레를 만들어 놓고...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것들이 순간순간 채워졌을 때, 우리는 그것에서 만족하며 머무르지 못한다.
대리가 되면 과장이 되고싶고 과장이 되고나면 부장이 되고싶고...
그래서 그 반쪽은 항상 또 다른 나머지 반쪽을 생성해낸다.
사랑의 반쪽을 찾아 헤메이다가 어느날 그 반쪽의 사랑을 만나게되면 사랑을 하고
행복해 하다가도 어느샌가 그 사랑의 빈 공간을 찾게되고 또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또다른 사랑으로 채우려 안간힘을 쓰는 많은 사람들....
우리는 왜 하나라는 공간적 질적인 것에 만족이 없는 걸까...
그 하나가 시간과 세월 속에 왜 자꾸만 커져가고 불어나는 것일까...
어릴적 이빠진 동그라미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그 빠져버린 한 조각을 찾아 길을 떠난 후, 갖은 우여곡절 끝에
찾은 자신에게 꼭 맞는 나머지 조각으로 채우고는 행복해 했는데 그 행복도 잠시...
기쁨에 찬 동그라미가 이런저런 지난 얘기를 하려는데 입이 닫혀 말을 못하게 되니
애써 찾았던 그 한 조각을 슬며시 내려놓고는 다시 길을 떠난다는....
그 나머지 조각을 만나 본래의 동그라미를 이루게 되면 그것에서 만족을 하고 또한
행복을 찾으며 다소 불편함이 생겨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참고 양보하고 인내하며
또 다른 행복을 만들어 나가면 될 것을....
영원한 동그라미만의 행복으로 살아 갈 수도 있을 것을...
내가 살 집 하나만 장만하게 되면 그때는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리라...했던 사람들도
집을 장만하게 되면 또 이젠 좋은 차 하나만 구입하게 되면 정말 좋은일도 해 가며 즐기며
살리라...이러다가... 또 차 한 대를 장만하게 되면 또 다른 욕심의 굴레를 만들며 또 끝없는
욕망들을 채우기 위해 끝내는 '삶의 질을 높히기 위하여'라는 그럴싸한 명목을
내세워 가면서까지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해가며 욕심의 굴레를 넓혀가는 것이다.
예전의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에는 그래도 지금보다 삶의 질은 더 낮았을른지는 모르나
지금의 세대보다는 훨씬 값지고 보람있는 삶 속에 살았던 것 같다.
그때는 사랑을 해도 그 나머지 자신의 반쪽을 찾게되면 그 반쪽을 위해 목숨을 걸만큼
적극적이고 또한 순정적인 사랑의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이해보다도 좋으면 좋은 것으로 끝날 수 있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의 열정 같은 것...
무릎을 꿇고 연인의 집 문전에서 몇일밤을 세우면서까지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내던 그 순수한
사랑의 열정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떤가?
물론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랑에도 조건과 환경과 많은 물질의 상태가 우선으로 하는 가운데서 사랑을 찾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요즈음 세태들은 '나는 그 어떤 조건 보다도 남자의 인간적인 마음가짐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해.'
라고 그러면 바보같은 소리 말라며 바로 바보취급 당하니 말이다.
첫 눈에 반해서, 마음이 고와서, 예의바른 가정교육이 잘되어서...결혼하게 되었다는 말 요즘에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말이다.
직업이 무엇이냐?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 경제력은 어느정도이냐? 아파트 한 채는 사 놓았느냐?
이런 것들이 요즈음 누가 결혼을 한다고 하면 묻는 우선 순위의 질문들이다.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자녀가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하면 제일 먼저 묻는 질문들이다.
이래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옛날, 우리 어른들의 원초적 순수성을 잃지않는 사랑의 세대가 더 그리워지는
걸까...
그래서 그 시절,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가 세간의 화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걸까...
순수한 사랑을 지향하던 그 시절에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을 버리고 야망을 위해 재벌의 딸과
결혼을 했던...당시의 화제작이었던 드라마...아주 어렸을 적에 보았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이었던 원미경씨와 이덕화씨, 등등이 어렴풋이마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본 첫 속물적인 사랑과 욕망의 주인공이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채 영원히 욕망의 트라이앵글에 갇혀있는 자들이 속물이라는 것이다.
어느 교수가 이렇게 썼다.
속물들이 정당화되고 그 삶의 형식이 훈련되는 사회...즉, 스노보크라시(속물지배·snobocracy) 사회가
지금의 우리 한국 사회 최후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있다고...
남보다 잘 살기 위해 세속적인 욕망의 무한 추구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듯한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이며 우울한 현실의 초상이라고....
이 우울한 시대의 유일한 비상구는 사랑과 믿음이라고 했다.
이 슬픈 시대의 유일한 희망은 사랑과 믿음이라 했다.
그 사랑과 믿음이 조건에만 의한 것이라면 그건 말도 안되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불신과 불의가 난무하는 이기적인 세상...
물질만능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턱없는 세상에서 그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세상을
구르다가 또 다른 조각을 만나 동그라미를 이루게 된다면 조금 울툴불퉁하면 어떤가...
조금 헐렁하면 어떤가 말이다.
조금씩 양보하며 조금씩 아껴줘가며 조금씩 믿어주며 그래도 조금씩 사랑을 쌓아간다면 그것이
사랑이요 그것이 믿음이 아닌가 말이다.
조금은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라는 믿음...우리는 그 사랑의 믿음이 우선
하는 사랑을 하기위해 노력한다는 것, 그것만이 이 가파른 세상..사랑이 매말라가는 이 세상
에서 유일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이 시대의 사랑의 탈출구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반쪽....
일에도 삶에도 사랑에도 그 반쪽을 찾게되면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않고
그 반쪽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또한 그 반쪽을 찾아서 하나를 만들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쁨을 오래도록 누리며 지켜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 한다.
내가 만원을 벌어들이고 싶었다면 그래서 운이 좋아 만 천원을 벌었다고 치자.
그래서 그 나머지 천원을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건네줄 수 있다면 그 천원의 가치는 바로
만원을 능가할 것이라는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되기위해 나는 오늘도 나부터 반성하고 또 침묵하
며 숙고할 것이다.
그리고 세속적, 속물적인 근성에 동화되지않는 삶을 살기위해 마음의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져
본다.
나는 이제라도 내 삶의 그 어떤 반쪽이 채워진다면 힘들겠지만...어렵겠지만...
그 이상의 부질없는 욕심의 굴레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조관우 - 반쪽 사랑(영화 '숙명' OST 中 Main Theme) ♬
하늘에 별이 사라진 이 밤.. 혼자된 저 달에 널 그려봐.
하나부터 열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다 생각나.
가슴에 묻어버린 사랑이 외로운 밤이면 비집고 나와서
니가 보고싶다고 서둘러 찾아가라고 내 등 뒤를 미는데..
사랑해 사랑해.. 널 미칠만큼 사랑해. 아니 죽을만큼 사랑하는데..
내 품에 품어서 깨질것만 같아서 가까이에 가기에 너무 두려워..
한두잔 마신 술에 취해서 하나둘 모아둔 사진을 태워도..
끝내 태울 수 없는 눈부신 너의 미소는 나를 보며 웃는데..
사랑해 사랑해.. 널 미칠만큼 사랑해. 아니 죽을만큼 사랑하는데..
내 품에 품어서 깨질것만 같아서 가까이에 가기에 너무 두려워..
바람 앞에 촛불처럼 불안한 내 삶이 널 힘들게 할까봐..
그저 니 뒤에 난 그저 숨은 채 너의 행복만 손 모아 비는데..
미안해.. 영원히 반쪽인 나의 사랑아. 다시 안아볼 수 없는 사람아
하늘의 허락에 또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너의 곁에서 사랑할꺼야..
땡깡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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