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오름에 올라 일출을 만나자 했다.

톡톡 타닥타닥...

헐, 비내리는 소리다.

이러면 안되는데...

늘 함께 해주시던 여행신은 어디로 가셨단 말인가?

다시 이불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갔다.

얼마나 더 잤을까, 내다 보니  비가 그쳤다.

늦도록 젊음을 나누던 게스트하우스 식구들 모두 단잠에 빠졌는지 조용하다.

살금살금 나갔다.

 

(아침 일찍 물질에 나서는 표선의 해녀 아주머니들)

 

 

 

 

 

비맞은 잔디는 초록이 짙다.

솜씨좋은 쥔장의 손으로 만들어진 해먹도 물기를 머금었다.

꽃비와 마당에서 모델놀이 하고 있는데 어젯밤 함께 했던 친구들이 스쿠터를 챙긴다.

혼자도 떠나고 둘이도 떠난다.

 

환하게 웃으며 동그란 얼굴로 성격좋게 생긴 그녀는 분홍빛 스쿠터에 분홍빛 보호모자가 잘 어울린다.

맥주 두어잔에 얼굴 빨개지던 총각도 스쿠터에 앉는다.

 

"안녕하세요?"

"벌써 출발 하시게요? 아침은 드셨어요?"

"라면 먹었어요. 어느 쪽으로 가실거예요?"

"용눈이 오름쪽이요."

"어, 우리도 그러는데...잘 하면 만나겠는데요."

 

따로 따로 왔던 젊은이들이 친구되어 오늘은 함께 다니겠단다.

이쁘다. 

 

 

 

 

 

게스트 하우스 <와하하>를 나와 길을 나선다.

비는 그쳤으나 빛이 없다.

걷기는 좋으나 사진은 안되겠다.

아무려면 어때.

 

용눈이 오름 가는 길을 놓쳤다.

아무려면 어때.

어느 오름인들 반갑지 않을까?

 

억새 만발한 중산간 길에서 쉬멍 놀멍 걷다가 흔들리는 억새밭 속에서 바람도 맞다가

건너다 보이는 백약이 오름을 오르자  맘먹고 차를 세웠다.

반대편에서 오시던 아주머니들이 백약이보다 동거문오름을 오르라신다.

동거문오름은 입구를 찾기 힘드니 안내해주시겠단다.

그 곳에서 내려오시던 아주머니들께서 되돌아 한참을 다시 걸어주신다.

 

"내려올 때엔 오던 길로 다시 내려오세요.

오름은 낮아 보여도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가 있어요.

우리도 다른 길로 내려오다가 한참을 헤맸어요."

안내해주시던 아주머니들이 당부를 하신다.

 

 

 

  저 곳이 바로 동거문오름. 그냥 보기에는 상당히 뾰족하게 보였는데 사진에는 그닥  그래 보이질 않네.          

여기가 바로 동거문오름의 입구란다.

안내를 해주지 않으셨다면 도저히 찾지 못했겠다.

작은 나무 사다리를 올라 나무숲을 지나니 오름이다.

 

 

 

 

 

 

 

꽃비야 얼렁 들어와.

 

 

 

 

 

 

올라보자.

사진을 담기 어렵도록 뿌연 하늘이 아쉽긴 했으나 햇빛 적은 이만큼이 또 좋다.

물매화가 바람에 흔들리고, 꽃향유는 지천이고 인적은 거의 없고 좋다 좋다.

오름이 온통 우리 차지다.

 

 

 

 

 

오름 여기 저기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문득 걱정이다.

비오면 이 녀석들 어찌하나, 바람불고 날 차면 슬프도록 눈 큰 이 녀석들 어찌하나 걱정이 된다.

 

 

 

 

 

저 멀리 다정한 한쌍이 눈에 들어 온다.

저 녀석들은 무슨 사이일까?

친구일까? 연인일까? 아님 부부일까?

비바람 불어와도 저리 의지하며 살아가나 보다.

새삼 다시 보인다.

둘이라서 더 이쁘다.

 

 

 

 

 

무덤까지 어여쁜 예술이다.

쨍한 햇빛 받은 멋진 모습 담지 못함이 조금은 아쉽다.

가슴에 담으면 되는 것을 뭘 더 바라랴.

이 보다 더는 욕심이다.

 

 

 

 

 

 

 

올라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보다는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겠지?

쭈욱 내려가면 되겠는데 뭘.

의기투합하여 오름을 빙 돌아 오르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내려간다.

 

앞서가던 꽃비가 바람을 맞는다.

좋지? 꽃비야!

참말 좋지?

 

 

 

 

 

 

꽃비야, 거기 서봐.

어, 언니.

찰칵!!!

 

 

 

 

 

 

다시 뒤쳐진 꽃비가 언니! 하고 부른다.

돌아서니 저 위에서 셔터를 누른다.

 

 

 

 

 

 

얼마를 걸었을까, 드디어 나가는 문이다.

배낭은 벗어서 던져놓고 기어서 나왔는데 이를 어쩌나, 길이 없네.

이 뭣이람!!!

 

 

 

 

 

 

 

어디로 가야 하지?

어떻게 한다지?

그 때 문득 남편이 했던 말이 빛처럼 스친다.

 

꽃비야, 산이나 들에서 길을 잃으면 전봇대를 따라 가래. 그럼 마을을 만날 수 있대.

그래, 언니?

전봇대 있는 곳으로 가자.

 

 

 

 

 

전봇대를 따라 걸어봤으나 영 길이 나올 법 하지 않다.

이를 어쩐다.

다시 되돌아 몇 걸음 걷다가 전봇대를 믿자, 남편의 말을 믿자하고 어두운 수풀을 헤치고 걸었다.

 

 

 

 

 

 

그런데...

금세 나올 것만 같던 길은 보이질 않고 콩밭만 끝이 없다.

이 뭣이람?

빛 적은 날은 시간 그리 늦지 않았음에도 어둑하다.

 

혼자였음 얼마나 무서웠을까?

꽃비야, 니가 있어 좋다.

 

길잃고 헤매면서도 둘이어서 든든하고 둘이어서 또 신난다.

헤매지 않음보다 헤매어서 다음에 더 좋은 기억으로 남겠다.

 

너무 재밌지 않니?

하하하 깔깔깔...

 

 

 

 

 

 

콩밭가에 쳐진 초록색 나일론 그물을 기어넘어 가며 끝도 없는 콩밭 몇 개를 지나다 보니 아까 우리가 걸었던 길이 보인다.

꽃비야, 저기가 거기다. 어떻게 올라 가보자.

언니, 나는 올라가는 게 자신 없어. 저 쪽 낮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기어 넘자.

오늘 도대체 몇 번이나 낮은 포복을 한 것이야.

셀 수도 없네.

누가 시켜서 이 짓 했음 아마 대판거리로 싸웠을텐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후유, 간신히 길을 찾았다.

이제 얼른 걷자.

여기가 아까 그 길 맞지?

응.

억새 지천인 길을 얼마나 또 걸었을까, 갈래길이 나온다.

오른 쪽 아랫길인 것 같지?

터벅터벅 깔깔...

 

언니, 이 길이 아니여.

암만해도 그런 것 같다.

갈래길 시작하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윗길로 가자. 하하호호...

 

이 길이 맞네.

또 얼마를 걸었을까?

저만치 대로가 보이는데 그 길이 만나지질 않는다.

헐, 다시 또 길을 찾자.

큰길을 만나 등성이를 내려오니

휴, 저기 우리 차 세웠던 곳 보이네. 

 

 

동거문오름과 백약이 오름길이 갈라지는 저 곳에 우리차가 보이네.

아유, 반가워라.

 

아휴, 디게 쉬워 보였는데 우리가 왜 그리 길을 헤맸지?

오늘 일 두고 두고 재밌으라 그런 거겠지.ㅎㅎㅎ

아주머니들 말씀 안듣길 잘했지?

오던 길 되돌아서 별일없이 순탄하게 쪼로로 내려왔음 이만큼의 재미가 아니었을거야. 그치?

맞아, 맞아. 언니.

 

더 어두워지기 전에 백약이 오름 오르자.

어스름 저녁되니 더 좋다. 그치?

 

 

 

 

 

오름을 오르자니

생의 마지막까지 제주를, 제주의 오름을 필름에 담은

김영갑님이 생각났다.

그 분의 작품들이 생각났다.

새삼 참 대단한 분이시다는 생각

나도 파노라마로 담을 수 있는 기계가 있담 좋겠다는 생각

아님, 파노라마로 붙일 수 있는 기술이라도 배워볼까 하는 생각

 

 

 

(어둑한 오름에서 만난 물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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